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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선인들이 七星坮를 쌓은 이유(한라일보)
탐라선인들이 칠성대(七星坮)를 쌓은 이유
한라일보 2010년 10월 19일
제주선인들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은 무엇일까. 숱한 유산들 중에서도 '제주칠머리당 영등굿'은 지난해 유네스코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했으니 당연히 으뜸을 차지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하고 문화컨텐츠로 빛을 발할 수 있는, 제주신화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관점에 따라 문화유산의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필자는 제주성안에 북두칠성 형태로 쌓았다고 하는 '칠성대'를 꼽고 싶다. 칠성대는 칠성도라고도 한다. 이에 대한 유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하여 '노봉집(蘆峰集)', '제주읍지', '탐라지초본'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옛 지도와 19세기초에 만들어진 남원양씨족보에는 칠성대의 위치도도 그려져 있다.
'증보탐라지'에는 "제주읍성 안에 돌로 쌓아 만든 옛터 7개소가 있으니 고량부 삼을나가 일도·이도·삼도를 분점하고, 북두형(北斗形)을 모방하여 대를 세우고 분거(分居)한 성내를 대촌이라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찌기 향토사학자인 고(故) 홍정표, 홍순만선생이 고로들의 구증 등을 토대로 칠성대의 위치를 파악,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이들 자료를 보면 칠성골에 3개소를 비롯하여 '생깃골(향교동)', '상청(上倉)골', '이아(二衙)골', '두목(斗目)골'에 각 1개소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탐라인들은 왜 칠성대를 쌓은 것일까. (故)홍정표 선생은 "칠성대는 북두칠성에 대한 봉제(奉祭)의 제단이니 삼을나의 추장이 중심이 되어 치제(致祭)하는데, 각 부족의 번영과 아울러 나라(탐라국)의 융성함을 기원했던 자리"라고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탐라개벽 설화에 등장하는 세 부족이 활을 쏘아 일도, 이도, 삼도를 차지한 뒤 북두칠성 모양으로 대를 쌓아 나라의 번영을 위한 결속과 단합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필자도 1992년 여름 해방전후 시기에 일도동 구장을 역임했던 송천택 옹(작고)을 만나 칠성대 위치를 답사한 뒤 '칠성대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다룬바 있다. 그 때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북두칠성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운행하는 별무리다. 그런데 칠성대를 쌓으며 탐라선인들이 북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이상하다고 여겼다. 과학사전을 뒤져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북극성은 북두칠성의 마지막 별자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그 거리는 별자리와 별자리 간격의 두배 반 거리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칠성대의 마지막 별자리는 지금의 남문로터리 북쪽인 두목골에 있었다. 그에 앞서 여섯번째 별자리는 '이아골(구제주대병원 주변)'에 위치해 있었는데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러면 두배 반, 즉 마지막 별자리에서 1.5km 떨어진 곳에 고량부 세부족에게 의미 있는 곳은 어떤 곳일까. 바로 그들이 용출한 삼성혈을 북극성으로 설정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추정은 학계의 연구를 통해 밝혀질 일이다.
그러나 북극성을 제외했다고 칠성대의 의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탐라시대의 세부족은 물론 제주사회를 이루고 있는 현재의 모든 구성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깨움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주사회의 번영은 반목과 분열을 탈피하고, 굳센 결속과 단합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하나의 도시가 태어날 때 부족의 번영을 이루기 위한 약속과 다짐의 선언(宣言)을 탑으로 쌓아 후세에까지 남긴 도시와 민족이 어디에 있을까. 칠성대를 복원, 제주가 지향해야 할 상징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한라일보 2010년 10월 19일 논설실장 강문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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