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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동_도대불(멸실).jpg (77.7 KB)   Download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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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강정동 도대불(한라일보)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등명대였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아쉬움도 없을 겁니다. "
강정리장, 강정동 노인회장 등을 지낸 윤경노씨(90)는 서귀포시 강정마을 '등명대' 흔적이 갯돌 몇 개로 남은 걸 보고 그렇게 말했다. 강정마을 등명대는 '제주의 도대불'에 실린 사진 말고도 강정마을회에서 내놓은 '강정향토지'(1996)에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다. '강정마을 포구 머리에 있었던 등대의 이름'으로 '환해장성의 마지막에 등명대의 철재 잔해가 보이고 있다'고.
그는 향토지에 실린 몇 줄의 기록을 뛰어넘어 등명대에 얽힌 기억을 상세히 풀어냈다. 도두나 북촌처럼 비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등명대로 불러왔다고 한다. 일찍이 '향토강정'이란 단행본을 통해 강정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꼼꼼히 담아냈던 그다.
"강정포구에서 출항한 어부들이 해상사고를 많이 당하자 '세상과 이별하는 포구'란 뜻의 강정포구 별칭인 '세별포(世別浦)'를 영주포로 고친 적이 있어요. 1917년과 1920년에 강정포구를 나선 어선이 조난된 후 더 이상의 해상 사고는 없어야 한다며 마을 사람들이 영주포구 위에 돌탑을 쌓고 그 위에 등을 달아 위치를 알려주는 시설을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등명대입니다."
영주포로 작명한 이는 바로 윤씨의 큰할아버지(윤영환)였다고 했다. 그는 당시 등명대에 석유로 불을 켜는 역할을 맡던 마을 주민의 이름도 언급하며 "어부들이 불을 켜는 사람에게 보답하는 뜻으로 종종 바닷고기를 반찬거리로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덧붙였다.
강정동 등명대는 차츰 그 기능을 잃어갔고 1990년에 현대식 등대가 설치되면서 그 자리를 온전히 빼앗겼다. 해안을 가르는 도로는 가물가물한 기억마저 앗아갔다.(한라일보 2010년 3월 5일 진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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