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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리 돈수암지 12-04 | VIEW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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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구좌읍 하도리 994번지[일주동로 3618-1]. 현재의 금붕사 자리.
시대 ; 고려
유형 ; 불교유적(절터)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고려 시대 돈수암의 옛 터이다.
돈수암사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재주동팔십리(在州東八十里)’라 기록되어 있다. 또한 『증보탐라지』에도 “제주읍동삼십이리허(濟州邑東三十二里許)에 재(在)하니 금폐(今廢)”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까지 그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경계 지점 일주 도로변에 있는 ‘금붕사’ 일대가 돈수암지가 아닌가 하는 학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금붕사 경내에는 물맛이 달다고 하여 ᄃᆞᆫ물이라 불리는 샘물이 있었다. 금붕사에 화재가 자주 일어남에 따라 풍수지리설에 의해 ᄃᆞᆫ물 자리에 지금은 거북이 상을 조성하여 ᄃᆞᆫ물을 막고 있다.
제주도에서 ‘ᄃᆞᆯ다’라는 말이 ‘달다’라는 말임을 확인할 때, ᄃᆞᆫ물은 단물을 뜻하는 것이 확실하다. 또한 이 단물은 마을 주민들이 제를 지내거나 신성한 일을 행할 때 사용하던 물이었다.
따라서 돈수암이라는 명칭은 ‘ᄃᆞᆫ물’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금붕사 주변 지역에서는 기와편, 혹은 자기편 등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그 정확한 판단을 유보하는 있는 상황이다.
돈수암지에서는 백자 4점이 출토되었다. 기종은 접시만 확인되었으며 모두 문양이 없는 순백자이다. 이는 지방 가마에서 포개구이하여 제작한 조질 백자로 확인되었다. 굽과 내저 바닥에 남아 있는 받침 수법으로 볼 때 출토품은 태토비짐과 모래를 사용하여 번조한 두 종류로 확인된다. 모래를 받쳐 번조한 것이 3점이고, 이들 3점은 접시 저부편으로 굽은 바닥을 거칠게 다듬은 평저이며, 굽바닥과 내저에 모래를 받쳐 번조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또한 무문 암키와편 1점도 수습되었는데, 색조는 갈색이며 소성은 양호하다. 기와 배면에는 포흔과 분할 계선이 관찰되었다.
금붕사 일대에는 일제 강점기 유적인 전분 공장과 물통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ᄃᆞᆫ물에는 거북이상이 세워졌다. 인근에는 패총 유적이 다수 발견되어 이곳이 선사 시대부터 마을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ᄃᆞᆫ물이라 불리던 곳이 현재까지 남아 있고, 인근에서 발견되고 있는 패총 유적지와 관련하여,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돈수암지와 관련하여 인근의 여러 지역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곳 금붕사 일대가 돈수암지 사찰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그중 가장 높다고 판단되고 있다.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 오성)
사찰이 맨 처음 창건된 연대는 미상이나 1702년 이형상 제주목사에 의해 폐사되었다가 1926년 대승각 비구니스님이 창건하고 다음에 이승봉스님에 의해서 중창되었으나 제주 4.3사건 때 토벌대에 의하여 주지스님이 총살당하고 대웅전과 요사채가 소실되었다. 그후 따님이신 행안스님이 불사를 이었고, 금붕사 주지이신 수암스님 까지 4대에 걸쳐 85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절이 유지되어왔다.
《작성 1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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