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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리 버들못 인근 학살터 07-14 | VIEW :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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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표선리 1707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가시리 주민 집단학살 터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가시리 주민 76인이 1948년 12월(음11월22일) 집단총살된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창고가 딸린 과수원이 있다. 버들못(지금은 매립하여 도로로 사용중=위 사진)은 표선리 1686번지에 있어 이곳과는 도로를 따라 약 430m의 거리가 있으나 이 지경을 부르는 특정한 이름이 없어서 ‘버들못 학살 터’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 날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은 흙을 살짝 덮은 정도로 1년 정도 방치되었다가 1949년 5월 가시리가 재건되기 시작한 후에 약간의 여유를 찾은 유족들이 하나 둘 찾아갔다고 한다.
당시 표선교에 부모와 같이 수용되었다가 이곳에서 부모를 잃은 오국만(2003년 71세)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죽이는 그 날은 느닷없이 군인과 경찰이 국민학교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전부 운동장으로 나가라 했습니다. 그래서 나가니까 호적상 전가족이 있는 가족은 한쪽 옆으로 서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운동장 가운데 세워 놓고 젖먹이 애기 어머니와 15세 미만은 나오라는 겁니다. 저는 당시 17살이었는데 키도 작고 하니까 아버지가 수용자 명부를 작성할 때 14살로 올려 놓았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났지만 저와 동갑인 친구도 같이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갈라놓은 다음에 남은 사람들은 도피자 가족이라고 해서 몰고 간 겁니다.  그 때 시신에는 흙을 좀 덮었다가 다음해 가시리에 올라온 후에 시신을 마차에 실어서 운반해다 묻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한복을 입었었는데 한복 두루마기 안에 담뱃대를 딴딴하게 묶어서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일부러 그 담뱃대로 시신을 찾으라고 그렇게 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당시 오국만씨의 형님들은 모두 장가가서 살림을 따로 하고 있었는데 형들이 없다는 이유로 도피자 가족으로 분류된 것이었다. 가시리의 당시 가호는 363호인데 4·3 관련 피해를 보면 사망 374인, 실종 12인, 이재민 1,200인, 가옥 전소, 소 1,000마리, 말 660마리 등이다.
《작성 19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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