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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1리 선흘분교장 03-21 | VIEW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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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조천읍 선흘리 1019번지(조천읍 선흘동1길41)
시대 : 일제강점기(1936)
유형 : 교육기관(초등학교)
일제강점기 선흘리는 선흘 본동 및 인근의 실물가름, 새동네(장상동), 큰굴왓, 작은 마을을 비롯하여 알선흘과 봉냉이동산, 돗바령(돝바령), 선인동, 베케동(百花洞) 등 여러 작은 마을로 이루어져 450여 가호에 2,000여명이 살던 큰 마을이다.
1936. 4. 5. 주민들이 학교 부지를 희사하여 4년제 선흘간이학교 인가와 동시에 현재 선흘분교장의 위치인 선흘1리 1018번지에서 개교하였다.
간이학교란 일제가 농촌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교육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미명하에 1934년 1월 학비(學秘) 제2호로 간이초등교육기관설치에 관한 건을 발표하여 일본어를 보급하고 직업에 대한 관념을 깊게 하는 동시에 일본정신을 불어넣으려는 의도에서 설립된 2년제 학교이다. 정규학제와는 상관없는 종결교육기관으로서 공립보통학교와 연결되지도 않고, 상급교육기관에 진학하기 위한 준비교육을 실시하지도 않았다. 간이학교 경영 지침에서 교원에게 당부하기를 “당신은 환경상, 가정 형편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자제의 교사일 뿐만 아니라 아동의 부친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국가는 당신에게 크게 기대를 걸고 있다. 가르침을 받은 아동들은 천황 폐하의 충량(忠良)한 신민(臣民)이며 있어야 할 미래의 보배이다”라고 하였다.
간이학교는 공립보통학교에 부설되어 있었으나 독립된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여, 자체의 교육과정으로 초등교육을 완성시키도록 하였다. 다만 공립 보통학교의 교장과 훈도를 겸임하도록 하였다. 실시 초기에는 주로 농촌에 설립하였으나 점차 도시에도 확산되어 도시 간이학교와 농촌 간이학교로 크게 나누어지게 되었다. 학급은 단급으로 편성하여 평균 10세 정도의 아동들을 입학시켰다. 각 학년마다 40명씩 80명을 정원으로 하였으며, 교과목은 수신·일어·국어·산술·직업 등 5과목으로 하였다. 수업시간은 1주일에 30시간 이내로 하고 보통교과와 직업교과는 2:1의 비율로 시간을 배당하여 직업과목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교원은 한 학교에 한 명씩으로 하되 반드시 학교가 있는 마을에 정주하여 직업도야에 힘을 기울일 것을 강조하였다. 즉, 간이학교의 교원은 교과목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근무시간에 관계없이 모든 촌락민을 계몽, 교육해야 하므로 일종의 촌락개학(村落皆學)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도시 간이학교는 본교의 교사와 교지를 사용하고 교원의 겸임도 가능한 반면, 농촌 간이학교는 독립된 교사를 사용하고 반드시 전임교원을 배치하게 하였다. 대부분 학교의 운영은 관비로 충당되었으나 개량서당을 간이학교로 개편하고, 서당 설립자로부터 토지를 기증받아 농촌실습지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민의 호응이 적을 뿐 아니라 1930년대 후반부터는 민족말살정책이 적극화되어 더 이상 설립이 추진되지 않았으며 광복 전까지 모두 국민학교로 전환되거나 폐교되었다.
제주도에서는 1934년 애월면에 고성간이학교(古城簡易學校)와 서귀면에 서호간이학교(西好簡易學校)가 설립되었으며, 1935년 성산면 난산리(蘭山里)에, 1936년 조천면 선흘리(善屹里)에, 1937년 한림면 금악리(今岳里)에, 1938년 제주읍 용담리(龍潭里)와 구좌면 송당리(松堂里)에 각각 간이학교를 설립하였다. 이후 간이학교 6곳을 더 증설하였다.
학교 교정에는 김완현기념비(1938년), 학교설립공로표창비(1939년)가 있어 학교 설립에 공적이 큰 분들을 기리고 있다. 공로표창비에 있는 이름은 安昌浩, 李基文, 安昌植, 高章奎, 武藤鐵太郞, 金亨鉉, 牛訪好, 洪淳汶, 夫用珍, 高平奎이다. 재물을 내었다는 내용은 없고 이름만을 새겨 놓았다. 이름 중에는 武藤鐵太郞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인이 학교설립에 동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이름이 창씨개명한 한국인이 아니고 일본인이라고 보는 근거는 창씨개명이 1939년 11월 10일 공표되고 1940년 2월부터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우측면에는 昭和十四年四月 日 善屹里民 一同이라 새겼는데 昭和라는 글자는 훼손이 심하다. 광복 뒤에 마을 주민들이 훼손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것도 같은 사례일 것으로 보인다. 昭和14년이면 서기로는 1939년이다.
1944. 05. 15. 6년제 선흘공립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 당시 학교 건물은 25평 정도의 교실 2개, 작은 교무실을 포함하여 약 60평 정도의 석조 기와 본관과 북쪽에 목조 기와 변소, 본관 남서쪽에는 목조 도당(함석)의 관사(방 2, 마루, 부엌)가 있었다. 학교 부지는 약 1,000평 정도였다.
1948. 10. ○. 4·3사건으로 약 1개월 동안 9연대 일부 병력(1개 중대)이 주둔하였다. 이 때 마을 주민들이 토벌대의 횡포에 고초를 당하게 되자 젊은이들이 산으로 피신했다.
1948. 11. 21. 마을 주민이 해안 마을로 소개되었고 이 날 토벌대에 의해 텅빈 마을이 방화되면서 학교도 함께 전소되었다.(마을 주민 김형조, 박기행, 부보배의 증언)
1950. 08. 03. 함덕국민학교 선흘분교장으로 다시 인가되었다.
1953. 04. 01. 선흘국민학교로 승격 개교하였다.
1974. 03. 09. 선흘2리에 양잠단지 분교장이 인가되어 선흘국민학교에 소속되었다.
1982. 03. 01. 양잠단지 분교장을 선인분교장으로 개명하였다.
1984. 03. 05. 병설유치원이 인가되었다.
1995. 03. 01. 학생수 감소로 함덕국민학교 선흘분교장으로 개편되었다.
2002. 03. 31. 잔디운동장(600평)을 조성하였다.
2013. 03. 01. 학생수 22명
2014. 11. 27. 선인동 학생을 선인분교장에 다니도록 학구를 조정하였다.
2015. 03. 01. 제주도교육청에서 건강생태학교로 지정하였다.
2017. 02. 06. 총졸업생 1027명을 배출하였다.
2018. 05. 00. 4개 교실을 증축하였다.
2020. 03. 01. 학생 92인이 재학하고 있다.(교감 1인, 교사 7인, 행정직 및 조리원 등 7인 근무)
《작성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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