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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1리 김일영생가 터 05-09 | VIEW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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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소 ; 대정면 도원리
위치 ; 대정읍 신도리 1342번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위인선현유적

김일영(金日榮, 1852∼1936)은 본관이 경주이며, 대정읍 도원리 태생으로 자는 권삼(權三), 호는 제남(濟南)이다. 일생 동안 서당 훈장으로 이름이 알려져 산남 지방의 신도, 의귀, 예촌(신례) 등지와 산북 지방의 귀덕, 신창, 조수, 고산 등지에서 초빙되어 학동을 가르쳤다.
김일영은 신도 큰훈장 또는 ᄆᆞ르왓훈장, 동생 김일해는 신도 작은훈장 또는 무드내(제주시 용강동)훈장이라고 불렸다. 형제 모두 대정향교 도훈장을 역임했다. 1901년에는 대정 유림이 日本勢·佛國勢에 저항하는 봉기가 있었다. 이는 일본 어선이 대정 해안에서 노략질하는 데 대한 유림의 분노와 맥을 같이 한다. 말년에는 향리에 재래식 서당을 개설하여 강한 민족 주체성과 외세배격을 중심으로 훈학하였다.
신도리에서는 많은 항일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는데 이들은 1927년에 창립한 신도소년단원들이며 2,3년이 지나자 신도청년단으로 바뀌었다. 이 무렵 마을 바닷가 거문여 근처에 일본 화물선이 좌초했을 때 청년단원들이 왜선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한 적이 있었다. 이를 사건화하여 모슬포경찰관주재소의 일본인 순사 오무라(大村)가 마을에 이르러 청년단 간부를 연행하였는데 청년 김승지(金承址)는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청년단 활동도 중지되었다.
신도리 출신 항일투쟁가로는 제주공립농업학교 동맹휴학 사건의 주동자로 독립유공자 서훈(애족장)을 받은 김희봉을 비롯하여, 미서훈 독립운동가로 좌행옥(左行玉, 1907년생)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인청년동맹과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5년형을 복역하였으며, 김익휴(金益休, 1913년생)는 일본공산당 청년동맹의 항일활동으로 2년형을, 부태환(夫泰煥, 1910년생)도 제주농업학교의 학생활동으로 퇴학당하였고 이어 제주청년동맹과 혁우동맹, 해녀항일투쟁의 배후 인물로 2년형을 받았으며, 강규찬(姜圭贊, 1910년생)도 일본 오사카에서 노동운동(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전협)에 앞장서다 투옥된 바 있다. 이들 활동의 연원에는 김일영과 김일해가 있었다.(제주인물대사전)
병환으로 타계하여 3년상이 끝난 1938년 문하생들에 의해 濟南金日榮先生功績碑(제남김일영선생공적비)가 마을 신작로변에 세워졌다. 그러나 비석 상단에 음각된 태극 문양을 일제 당국이 문제삼았다. 이를 배일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뜻으로 새겼다면서 비석을 세운 주동 인물을 연행하여 심문하였다. 결국 태극 문양을 제거하고 비석을 철거하기로 하여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았다.
문제가 되었던 원비가 있는 신도리 1342번지는 후손이 소유하고 있으나 현재는 다른 사람에게 빌려줘 있고, 비석은 건물 서쪽 울담에 기대어 보존되고 있다. 김일영의 묘는 신도리 1383-2번지(옛 학교터=산경도예 북쪽 경작지) 가운데에, 김일해의 묘는 같은 번지의 동쪽 끝 부분에 있다.
원래 기념비에 쓰인 비문은 다음과 같다.
앞면 ; 濟南先生都訓長金公日榮紀念碑 子 成河 成彬 孫 憲植
뒷면
天命賢師: 하늘의 명으로 훌륭하신 스승님께서
謫下人間: 인간 세상에 귀양 오셨네.
道心藏玉: 도심은 옥을 감춘 듯하고
文望重山: 문망은 산보다 무겁네.
皇考厚德: 황고의 후한 덕으로
先開學館: 먼저(앞서) 학관을 열었네.
光生後蒙: 광화(光化)는 후생을 기르셨고
名高世班: 명성은 세상에 또렷하게 높다네.
斐然成章: 찬란히 문장을 이루니
風動南寰 : 학풍은 남쪽 고을에 떨쳤네.
一片短碣: 한 조각 작은 비석
瞻仰難攀: 우러를수록 오르기 어려워라.
신도 무릉 조수 청수 고산 용수 저지 명월 두모 금등 귀덕 의귀리
소화 13년 4월 일 문인 일동 근립.

참고
道心 : 도덕(道德) 의식(意識)에서 우러나오는 마음. 사욕(私慾)에 더럽혀지지 아니한 마음
文望 : 학문(學問)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과 신망(信望)
光 : 光惠, 光勳, 光訓, 光化 등의 의미. 光化는 德化임.
班 : 斑 또는 이어지다. 世班 : 세상에 또렷하다. 대대로 이어지다.
寰 : 音은 현. 州縣의 의미. 縣의 音은 현과 환이 있었음.
(번역 김태국)

옛 학교터 북쪽 밭에 그의 묘가 있으며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있다.
〈공의 계는 경주니 휘는 일영이고 자는 권삼이며 호는 제남이다. 이조 개국공신 익화군 휘 인찬의 자 훈련도감 휘 검룡의 17대 손이다. 고조는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을 지내시니 휘는 용(墉)이고 증조는 통덕랑 휘 영충(穎忠)이고 조는 통덕랑 휘 종안이고 고는 장사랑 휘 태문이고 어머니는 남평문씨니 공께서는 철종 임자년(1852)에 태어나셨다. 배는 양씨 희공의 딸이나 일찍 돌아가시고 계배는 진주강씨 사무의 딸이니 2남 1녀를 낳으셨다. 장남은 성하이고 차남은 성빈이며 딸은 진명렬에게 시집갔다. 손자는 헌직, 훈직, 한직이고 증손은 대철 대륜이다. 공께서는 천성이 순수하고 어질었으며, 마음을 가라앉혀 학문에 뜻을 두고 스스로 대성할 것을 기약하며 고부 이상사(上舍: 생원, 진사) 회익 문하에 나가 성리학을 익히고 연구하였고 또 시경과 예기를 배워 마침내 유림의 영수가 되니 따르는 무리가 문하에 가득하였다. 정축년 9월 2일 돌아가시니 녹남오름 서쪽 ᄆᆞ루왓 갑좌이니 후학들의 추모비가 앞에 있다. 양씨묘는 사계리 ○삼당밭 임좌이고 강씨묘는 산지천 남쪽 묘좌이다. 소화 경진년(1940) 가을 장손 헌식이 삼가 세우다.〉(번역 김태국)
《작성 20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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