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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1리 김희봉 지사 거주지 터 05-10 | VIEW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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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대정읍 신도리 1399-1번지(도원로202)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위인선현유적

김희봉(1907.04.16.~1991.04.22.) 지사는 1907년 4월 16일에 대정읍 신도리 1618번지에서 김석주(金錫柱)의 아들로 태어났다. 후에 1399-1번지에 살았다. 김희봉의 일본식 이름은 마츠나가[松永喜奉]이다. 제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6년 6월 25일 일어난 동맹휴학(同盟休學) 사건으로 2학년 재학 중 퇴학되었다.
제주공립농업학교 동맹 휴학 사건은 제주도에까지 불어온 6·10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일본인 교장 배척운동으로 일어났다. 야나기다[柳田]는 전임 미마 교장이 순직한 후 교장 직무 대리로 집무하였는데 조선인을 얕잡아 멸시하고 민족 차별을 노골화했기 때문이다.
동맹 휴학에는 1·2학년생 전원이 참여하였는데 학교 당국은 7월 12일 맹휴한 1·2학년생 전원에게 무기정학 조치라는 초강경책을 썼다. 이에 동창회·학부형회·지역유지들이 모여 홍순녕(洪淳寧)·장용견(張容堅)·채수용(蔡洙鎔)·고석종(高碩鍾)·장희순(張禧淳) 등 5명을 대표로 선출, 학교에 맞섰다. 이 일로 야나기다는 평북으로 좌천되고 재학생이던 김희봉을 비롯한 강일빈(姜一彬)·문두희(文斗熙)·양유생(梁酉生)·문승권(文昇權)·최봉섭(崔鳳涉)·강창거(姜昌擧)·김창일(金昌鎰)·김희봉 등은 퇴학 처분되였다.
김희봉 지사는 1931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와키야마[和歌山]시 동정관정(東釘貫町) 中曷元楠方에 거주하였는데, 1931년 11월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全協] 섬유노조 와키야마지부의 책임자로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무렵 동향(同鄕) 후배인 김익휴(金益休)를 만나 사회 모순과 일제의 민족 차별에 공분을 느끼며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게 되었다. 서로 뜻을 같이하여 혁명에 의해 현대의 국가 조직 및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며 무산자 사회의 실현으로 민족의 해방 운동에 몸 바치기로 하였다.
1933년 2월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여 「적기(赤旗)」 배포책으로 활동하다가 4월에 검거되었다. 당시 대판공소원(大阪控訴院)의 1934년 2월 5일 「수형인명부」를 살펴보면,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4년에 선고를 받았다. 1991년 4월 22일 사망하였다.
2006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愛族章)을 추서받았으며, 2008년 4월 우리고장 출신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향토문화전자대전) 김희봉 지사의 생가에는 지금은 문씨가 거주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생가는 알 수 없으나 김희봉 지사가 살았던 곳은 도원로202번지라고 하였다.
《작성 20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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