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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리 산방굴사 06-23 | VIEW :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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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안덕면 사계리 3693번지
시대 : 고려
유형 ; 종교유적(사찰)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산방산(395m)은 유동성이 적은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종상화산(용암원정구)이다. 제주의 많은 오름들과는 달리 정상부에 분화구가 없다. 형성 시기는 대략 70∼80만년 이전이다.
산 중턱에 방이 있어서 산방산이다. 해발 150m에 있는 이 방은 해식동굴(海蝕洞窟)인데 길이가 10m, 너비와 높이는 각각 5m 정도이다. 여기를 산방굴이라 부른다. 맨 안쪽에 불상을 모셨다. 예로부터 산방굴사라고 하였다. 창건 시기는 고려시대라고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의 시승(詩僧)으로 알려진 고승 혜일(蕙日)이 수도했다고 하며, 선사(禪師)들이 머물다가 간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혜일 스님이 모셨던 것으로 알려진 석불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가져갔다고 한다. 귀양왔던 추사 김정희가 즐겨 찾던 곳이기도 하다. 산방굴사는 영주10경 중 하나이며 국가지정 명승 제77호이다.
굴의 천정에서 계속적으로 물이 떨어지는데 이를 산방덕이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산방굴의 여신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고성목(또는 고승)이라는 속세의 인간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는데 고을의 벼슬아치가 그녀의 미모에 빠져 포졸을 풀어 남편을 잡아가고 가재도구까지 몰수하며 압박을 가하자 그녀는 다시 산방굴로 들어가 바위로 굳어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산방굴에는 산방덕이 변해서 된 바위 밑으로 한 줄기의 물이 쉬지 않고 떨어지며 작은 샘을 이루고 있는데 그 물 줄기는 산방덕이 인간 세상에서 사랑했던 고성목을 그리워하며 스스로 기막힌 운명과 현세의 고해를 비탄하여 흘리는 눈물이라 전한다.
굴 안에는 박정행(朴正行), 현감 원상요(元相堯), 목사 한정운(韓鼎運), 구령석(具齡錫), 임관주(任觀周)의 시를 비롯하여 남만리, 장달훈, 조우석, 신의환, 안윤경, 조희석, 장현수, 오치각, 여철영, 홍종우, 이양정, 이경린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산방굴사에 대한 발굴조사도 있었지만 자연동굴을 이용한 사찰이었기 때문에 관련 유물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산방굴사가 있는 인근의 절왓(寺田)이라 불리는 경작지에서 절터가 발견되었고, 이곳을 사계리 절터1로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는 기왓조각을 비롯하여 상감청자 조각, 분청사기 조각, 청자 조각, 백자 조각 등의 도자기 조각이 다량 출토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북쪽으로 500여m 떨어진 바굼지오름과 산방산 중간의 사계리 절터2에서도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양가물 동네 주거 지역을 비롯한 북쪽의 경작지와 과수원, 임야 등지에서도 도자기 조각과 기왓 조각들이 발굴되고 있어 과거 이곳에 대사찰이 존재했었음을 말해준다.
1960년경에 산방굴사에 다시 석불좌상을 모신 것을 계기로, 1985년부터는 동굴 안에 석조여래좌상을 모셨다. 산방굴사 주변으로 현재 사찰 세 군데가 창건되어 있다.
굴 앞에 있는 노송 사이로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었다.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1703년) 산방배작(山房盃酌)에도 이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수령이 600년 정도인 이 소나무는 안타깝게도 2013년 재선충병으로 고사하고 말았다.
《작성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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