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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흥3리 이성예(李聖裔) 지사 생가 터 01-05 | VIEW :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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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남원읍 태흥리 116번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독립운동가 집터
이성예(1875∼?) 지사는 전주이씨 이휘근(李輝根)의 아들로 태어나 향리에서 1년간 한문을 배우고 한때 보천교, 수운교를 믿었다. 농사에 종사하던 1936년 2월경 고창길(髙昌吉)의 권유로 무극대도교를 믿게 되어 손녀 이신생(李辛生)을 정례부(情禮婦)로 보내어 도주 강승하를 시중하게 하였으며 포교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는 1936년 3월 상순 태흥리에서 김창규에게, 7월경 신흥리 고재민에게, 8월경 자기 집에서 태흥리 이정생에게, 9월경 세화리 김병호에게, 9월 9일 및 19일에 이정생에게, 10월경 자기 집에서 오임생에게 무극대도의 교의를 설명하면서 오는 경진년(1940) 경진월(5월) 경진일 경진시에 제주도 남방 자하도(紫霞島)에서 정도령 진인(鄭道令眞人)이 나타나서 부하 군졸 1천수백명을 인솔한 홍선(紅船)에 홍기(紅旗)를 단 태을선(太乙船)을 타고 중문면 대포리에 상륙하여 도주 강승하와 협의한 후 충청남도 계룡산에 가서 조선을 독립시키고 천자(天子)로 등극하여 세계를 72개 국으로 나누어 전세계를 지배할 것이고, 그 때 가서는 각국의 왕은 물론 일본의 소화천황도 1940년에 폐제(廢帝)되어 일개 왕후(王侯)로서 정천자 밑에 조공할 것이고 무극대도교는 국교가 되어 그 교도는 성의에 따라 성인반열(聖人班列)에 올라 후천(後天)5만년의 영락(榮樂)을 입어 천성당(天聖堂), 만성당(萬聖堂), 영당(靈堂)에 봉사(奉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신도들과 각종 제사를 지낼 때에 1936년 4월 27일 동광리 강위경 집에서 사방주고천제(四方主告天祭), 9월 3일 토산리 김창규 집에서 정례고천제(精禮告天祭), 11월 1일 창천리 군산봉에서 산왕제(山王祭), 1937년 4월 2일 상례리 고무생 집에서 도주계통승계기념제, 7월 30일 동광리 양기현 집에서 강증산(姜甑山)사망기념제에서 심고문(心告文)을 구송(口誦)하면서 정도령 천자가 출현하여 조선 독립 및 세계 통일을 이룰 것을 기원하였다.
1940년 12월 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불경죄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아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무극대도교 사건 판결문 참조) 이성예 지사는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였다. 생가 터에는 현재 집이 없고 잡초가 자라고 있다.
《작성 210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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