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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리 오남학(吳南鶴) 지사 생가 터 01-07 | VIEW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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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남원읍 한남리 753번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집터(위인선현유적)
오남학(吳南鶴, 일본식 성명 猛淸南鶴모오세이, 1972년 吳自文으로 개명) 지사는 1921년 군위오씨 오병생(吳丙生)의 장남으로 남원면 한남리 753번지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건너가 1940년부터 부친이 경영하는 군수협력공장인 조일(朝日)화학공업소에서 부친의 사업을 도왔는데 자재 구입을 위하여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는 일이 많았다.
이런 일로 많은 이야기를 듣고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할 것을 예견하고 특히 1942년 4월 미군기(항공모함 호네트호에서 발진한 둘리틀 편대=B25중거리 폭격기 16대)가 일본 도쿄(東京)를 공습하고 1944년에도 미군기가 도쿄를 공습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일본의 패망이 도래했음을 직감하고 제주로 귀향하였다.
※미군은 도쿄 공습을 1944년 말부터 시작했으며, 대규모 공습은 1945년 3월 10일에 있었다. 330대가 넘는 B29 폭격기에 100만 발 이상의 네이팜탄(2,400톤)을 싣고 가서 2시간 동안 군수기지와 일반 시가지를 융단폭격했다. 이 공습을 지휘한 미공군의 커티스 르메이 소장은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일본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버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군은 공습(원폭 포함)에 앞서 공습이 있을 테니 삐라 뒷면에 적힌 12개 도시를 떠나라는 삐라를 6,300만 장이나 뿌렸다고 하는데 일본은 이 삐라를 가지고 있기만 해도 체포했으며 피난가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했다. 폭격을 당한 도시들은 거의 평지처럼 변했다.

제주에 들어와서는 1944년 12월 9일 처가인 남원리 정조원의 집에서 3명에 대하여, 13일에는 서귀리 백준삼의 집에서 3명에게, 17일에는 한남리 오봉희에게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 1944년 12월 3일 도쿄에 미군기 70기가 내습하여 기차를 공습하여 많은 사상자를 냈다. 또 나고야에 출장하였을 때 공습 상황을 목격하였으며, 미츠비시 공업회사는 형체 없이 전부 파괴되었다. 한편 싸이판섬의 총지휘관으로부터 도죠 히데키(東條英機) 수상에게 ‘연합함대의 원조만 있으면 싸이판섬의 미군을 격멸할 자신이 있다’고 타전했는데 도죠 수상은 내각에 발표하지도 않고 ‘그 상황에서 감투하라’고 회전했다. 그리고 ‘신중히 고려하여 연합함대를 보내 주시오, 패전하는 날이면 어찌 하겠소?’라고 타전했으나 전과 같이 ‘그 상황에서 감투하라’고 했으며, ‘비전투원은 어찌 하오?’라고 타전하자 도죠 수상은 ‘감투하라’고 회전하였다. 또 네 번째로 ‘도죠 내각은 총사직하시오.’라고 타전하고 싸이판섬 전원이 옥쇄하였고 따라서 내각도 총사직하였다.”라는 말을 했다.(판결문 참조)

이러한 말을 한 것이 발각되어 구속된 그는 1945년 3월 16일 광주지법 제주지청에서 소위 육군형법·해군형법·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얼마 없어 부친과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살다가 1992년 4월 23일 오사카 동성구(東城區)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광복절에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집터에는 건물이 없고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작성 2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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