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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오정숙(吳禎淑) 지사 생가 터 01-07 | VIEW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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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표선면 가시리 2480번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독립운동가 집터
오정숙(吳禎淑. 1891∼1958) 지사는 軍威吳氏 오찬백(吳贊伯)의 아들이다. 한때 민족종교인 보천교를 믿었으나 1936년 11월경 강승태(姜昇泰)의 권유로 무극대도교에 입교하여 서방주(西方主)라는 칭호를 받아 핵심 신도로서 포교에 활약하였다. 그에 대한 판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36년 5월부터 1937년 6월까지 山王祭, 神將祭, 정례고천제(精禮告天祭), 도주통령기념제(道主統靈承記念祭), 特別祈願祭, 冬至祭, 도주계통승계기념제(道主系統承繼記念祭) 등 10차례의 제에 참석하여 조선이 독립되고 세계를 통일하도록 기원함.
󰋮1937년 5월 1일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지내는 산왕제의 제물로 꿩을 포획할 목적으로 가시리 오경화로부터 화승식 총 1정을 빌려 4월 27일, 28일, 29일에 관할 경찰서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총을 사용함.
󰋮위와 같은 일로 1937년 12월 일본 경찰 다니모도(谷本)에게 피체되어 1940년 12월까지 심한 고문을 동반한 취조를 받은 후 기소되어 1940년 12월 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 결과 보안법 위반, 수렵 규칙 위반, 총포화약 취체령 시행 규칙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징역 1년 및 벌금 50원형을 받고 복역함.(미결기간 3년을 형기에 산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 4년 이상 옥고를 치른 것으로 추정)
출옥 후 행적은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세화3리 김춘보(무극대도교 신자의 아들)씨에 의하면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되며, 아들이 있으나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도내에는 외손이 세화3리에 살고 있다. 생가 터에는 건물이 없고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였다. 묘는 남원읍 한남리 179-9번지에 있다.
《작성 202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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