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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오승언(吳承彦) 지사 생가 터 01-07 | VIEW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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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표선면 가시리 1889번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독립운동가 집터
오승언 지사(1887∼1946)는 軍威吳氏 오동현(吳東顯)의 아들이다. 한때 민족종교인 보천교를 믿었으나 1936년 5월경 강승태(姜昇泰)의 권유로 무극대도교에 입교하여 핵심 신도로서 포교에 활약하였다. 그의 공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36년 6월 중순부터 1937년 10월까지 신례리 양창익, 가시리 김석현·오국희, 수망리 현인옥 등 무극대도교 신도들에게 5회에 걸쳐 일본천황이 1940년 폐제(廢帝)되고 조선이 독립된다고 말함.
󰋮1936년 5월부터 1937년 6월까지 山王祭, 神將祭, 정례고천제(精禮告天祭), 도주통령기념제(道主統靈承記念祭), 特別祈願祭, 冬至祭, 도주계통승계기념제(道主系統承繼記念祭), 道主誕生記念祭 등 11차례의 제를 지내면서 조선이 독립되고 세계를 통일하도록 기원함.
󰋮위와 같은 일로 1937년 12월 일본 경찰 다니모도(谷本)에게 피체되어 1940년 12월까지 심한 고문을 동반한 취조를 받은 후 기소되어 1940년 12월 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 결과 불경행위를 하고 정치에 관하여 불온한 언동으로써 치안을 방해하였다는 죄목으로 징역 2년6월형을 받고 복역함.(미결기간 3년을 형기에 산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 5년 이상 옥고를 치른 것으로 추정)
󰋮출옥 후 행적은 확인하지 못하였으며, 생가 터에는 건물이 있으나 후손이 살고 있지는 않다.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였다.
《작성 202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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