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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1리 현시화(玄始化) 지사 생가 터 01-09 | VIEW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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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표선면 세화리 1092-1번지(올레가 긴 집터인데 현재는 집이 없고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음)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독립운동가 집터

현시화(1893.07.15.∼1968.07.03.) 지사는 연주현씨 현유형(玄維亨)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한 때 민족종교인 보천교를 믿었으나 1936년 10월경 강승태(姜昇泰)의 권유로 무극대도교에 입교하여 핵심 신도로서 포교에 활약하였다. 그의 공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36년 10월부터 무극대도교에 입교한 후 法贊師 天乙九人의 칭호를 받아 포교활동 및 항일운동을 전개함.
󰋮1936년 11월부터 1937년 11월까지 9회에 걸쳐 무극대도교 신도들에게 일본천황이 1940년 폐제(廢帝)된다고 말함.
󰋮1936년 11월부터 8회에 걸쳐 신도들과 心告文을 구송하면서 조선독립과 세계통일을 속히 성취하도록 기원함.
󰋮1936년 12월부터 特別祈願祭, 冬至祭, 道主系統承 記念祭, 山王祭, 七夕祭 등 수차례의 제를 지내면서 조선이 독립되고 세계를 통일하도록 기원함.
󰋮위와 같은 일로 1937년 12월 일본 경찰 다니모도(谷本)에게 피체되어 1940년 12월까지 심한 고문을 동반한 취조를 받은 후 기소되어 1940년 12월 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 결과 불경행위를 하고 정치에 관하여 불온한 언동으로써 치안을 방해하였다는 죄목으로 징역 2년6월형을 받고 복역함.(미결기간 3년을 형기에 산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 5년 이상 옥고를 치른 것으로 추정)
󰋮출옥 후에는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돌아가셨으며,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였다. 묘소는 표선면 세화리 2429번지(가세오름 북동쪽 자락)에 있다고 하나 필자는 해당 번지에서 묘를 찾지 못하였다.
《작성 2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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