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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산1리 김창규(金昌圭) 지사 생가 터 01-10 | VIEW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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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표선면 토산리 1400번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독립운동가 집터

김창규(金昌圭. 1884∼1978) 지사는 경주김씨 김서황(金瑞璜)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에 6년 동안 한문 공부를 하였다. 1920년경 보천교를 믿게 되었고 그 후 한때 일본에 갔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휴면상태였다. 1936년 태흥리 이성예의 권유로 무극대도교에 입교하여 오대부(五大夫)·천법사장(天法師張)이라는 직함을 받아 핵심 간부로 활약하였다. 판결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36년 5월부터 1937년 1월까지 신흥리 양태평·김을생·김창호, 토산리 김여주, 가시리 오정숙, 세화리 현귀숙 등 무극대도교 신도들에게 8회에 걸쳐 일본천황이 1940년 폐제(廢帝)된다고 말함.
󰋮1936년 4월부터 1937년 10월까지 특별기원제(特別祈願祭), 동지제(冬至祭), 상왕제(山王祭), 칠석제(七夕祭), 정례고천제(精禮告天祭), 도주계통승계기념제(道主系統承繼記念祭), 강증산(姜甑山)사망기념제 등 17차례의 제를 지내면서 조선이 독립되고 세계를 통일하도록 기원함.
󰋮1940년 12월 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 결과 불경행위를 하고 정치에 관하여 불온한 언동으로써 치안을 방해하였다는 죄목으로 징역 2년6월형을 받고 복역함.(미결기간 3년을 형기에 산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 5년 이상 옥고를 치른 것으로 추정)
󰋮출옥 후 행적은 확인하지 못하였으며, 생가 터에는 건물이 없고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였다.
《작성 2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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