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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2동 고전적(고홍진) 집터 02-17 | VIEW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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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이호2동 886번지. 남도주택 맞은 편 건물이다.
시대 ; 조선
유형 ; 위인선현유적(집터)
고전적(髙典籍)으로 알려진 고홍진(髙弘進)의 집이 있던 곳이다. 300여년 전 고전적이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고, 그후 양훈장이 893번지에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18세기 말에는 행정구역상 도두리에 속한 듯한데 묘 비석에 ‘도두리 오도동, 도두의 억삼이드르’ 등으로 표기되었다.
고홍진은 제주시 출생으로 풍수가로 유명하다. 전적(典籍)은 성균관의 정6품 벼슬로, 성균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한다. 그의 묘는 해안동 35-43번지에 있다.
디지털제주문화대전에서는 고홍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조선 중기 제주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문신. 선조35년(1602)生, 숙종8년(1682)歿.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퇴이(退而). 일명 고봉래(高逢萊)라고 한다. 제주시 이호동 가물개마을에서 고정순(高定舜)의 3남으로 태어났다. 과거에 세 번이나 급제한 것으로 유명한 고만첨은 그의 증손이다.
광해군10년(1618)에 폐모론을 반대하여 제주에 귀양 온 간옹(艮翁)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명도암(明道菴) 김진용(金晋鎔)과 같이 글을 배웠으며, 효종 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원진(李元鎭)의 소개로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1622~1673]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현종5년(1664) 제주별견시재어사 윤심(尹深)이 내도하여 시취할 때에 65세의 나이로 응시, 제주 유생 문영후·문징후 형제와 함께 문과에 급제하고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게 되었다.
1666년 식년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 배수(拜受)하고 귀향하였다. 제주목사 이원진이 『탐라지(耽羅志)』를 편찬할 때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년에는 제주시 이호동 가물개 마을에 살면서 훈학을 하였는데, 흔히 ‘가물개 고선생’이라고 불렸다. 제주에 유배된 이익(李翊)에게서 정주학(程朱學)을 익혔으며, 사학과 지리학에도 통달했다. 특히 풍수지리에 뛰어났다고 전한다.》
이원진(李元鎭)이 제주목사로 있던 1653년에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을 참고하여 제주도 내의 상황을 수집, 편찬하여 《탐라지(耽羅誌)》를 편찬했는데 이 때 당대의 석학으로 평가받던 고홍진이 감수하여 완성되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가물개 동네에 살았는데 서자(庶子)라서 차별받았다고도 한다. 명도암 선생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다 그분이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르고 묘자리를 보러 다녔다. 섬을 두루 다니다가 서귀포 토평 쪽 ‘큰도리굴’에 터를 잡아 스승을 묻었다. 몇 년후 풍수에 능한 ‘소 목사’가 부임해 섬을 순력하였다. 목사가 명도암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려는데 원래 자리가 아닌 좀 떨어진 곳에 준비하라 하였다. 안내를 맡은 명도암 선생의 아들이 까닭을 묻자, 목사가 답하길 “묘자리가 풍질이라 시신이 여기에 와 계시다.” 하였다. 얼마 후 목사는 지관들을 불러다가 이장할 자리를 물색하였다. 여러 지관이 원래 무덤 자리 주변을 찾는 중에 고홍진만 찾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목사가 괘씸하게 여겨 까닭을 물으니 고홍진이 답하기를 “목사께서 일어나시면 제가 보겠습니다.” 하였다. 목사가 앉아있던 자리가 명당이었던 것이다. 목사가 “이놈, 너는 명당 자리를 알고 있으면서 왜 풍질에 모셨느냐?” 하고 다그치자 스승이 생존 시에 서자라고 하대했던 감정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목사는 고홍진을 옥에 가두었는데, 꿈에 인통(仁筒)을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 떨어지고 다시 올려놓으면 떨어지길 반복하였다. 고홍진이 그 꿈을 해몽하여 그 덕으로 서울에 올라가 벼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이호동지)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는데 다음과 같다. 〈고전적은 김참봉이 훈장으로 있는 서당에서 풍수지리를 공부하였는데, 다른 학생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수지리에 능하였으나 서자 출신이라 하여 김참봉한테도 상놈과 같은 차별 대우를 받았다. 한 번은 고전적이 김참봉에게 어떻게 하면 양반 신분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김참봉이, “어디 상놈이 양반 되는 일이 있느냐?”며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김참봉이 죽어서 고전적이 묏자리를 잡아 주었는데, 그때의 원수 갚음으로 험지를 장지로 정해 주었다.
어느 해, 김참봉의 수제자로 암행어사가 된 사람이 제주에 와서 김참봉의 묘를 찾았다. 그런데 암행어사가 가보니 김참봉이 풍로(風路)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닌가. 암행어사가 고전적을 불러다놓고 어찌 된 일이냐고 따졌다.
고전적은 옛날 김참봉과의 일을 들먹이며 그때의 원한으로 그리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어사가 고전적의 실력이 소문만큼 뛰어난지 시험해 볼 요량으로 정혈 자리에 가서 앉으면서, 좋은 말로 고전적을 달래며 스승의 묏자리를 다시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고전적은 두말없이, 어사가 앉은자리에서 일어나면 정혈을 잡겠다고 하였다. 어사의 숨은 뜻을 단박에 알아챈 것이다. 그리하여 고전적의 실력을 인정한 어사가 전적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벼슬을 한 까닭이 부친의 묘를 잘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날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아들들이 가매장인 토롱만 하여 두고 1년이 지나도록 묏자리를 마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전적은 적자이자 맏형인 형님이 알아서 하겠거니 한 것이고, 형은 동생이 뛰어난 풍수가이니 마땅히 구산(求山)하리라고 여겨 서로 방심했던 것이다.
이에 기다리다 지친 형수가 고전적을 찾아와, 지리에 밝은 사람이 나서서 구산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하자, 고전적은 형님이 살아 있는데 형님이 먼저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도리라고 대답했다. 이에 형수가 돌아가서 남편에게, 큰아들이 먼저 장사 지내는 일을 걱정하는 것이 도리라고 하면서, 동생에게 묏자리를 보도록 청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형님이 묏자리를 봐주도록 청하여 고전적이 좋은 묏자리를 골라 드디어 장사를 지내게 되었다. 상두꾼들이 하관할 땅을 파는데 밑에서부터 물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하자 고전적은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면서, 입었던 상복을 벗어 한쪽 주머니를 떼고는 구멍에 슬며시 덮고 하관하도록 했다. 묏자리 형세가 옥녀하문형(玉女下門形)이기에 땅 속에서 물이 터진 것이 오히려 좋은 징조였던 것이다. 이렇게 장사를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전적은 서자 출신이었지만 전적 벼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 이야기에서 김참봉은 숙녕전 참봉을 지낸 김진용을 일컫는다. 그런데 김참봉과 고전적이 사제관계로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은 제주에 유배왔던 간옹 이익에게서 같이 공부한 동문이다. 김진용이 먼저 과거에 합격했고 고홍진은 65세가 되어서야 합격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변하여 전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소 목사라고 등장하는 인물은 소두산(蘇斗山. 숙종1년(1675) 6월∼숙종2년(1676) 2월 절제사로 재임)이다. 김진용이 숙녕전 참봉일 때 부모 말도 안 듣고 나쁜 짓이나 골라 하던 소두산을 맡아 마음잡고 공부하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고전적은 오도롱 윗 동네인 노형 광평마을과 관련된다. 바로 ‘고전적과 현치적’의 이야기이다. 고전적은 종종 현치적이 살고 있는 '진밭' 부근을 통해 다니곤 했는데 이렇게 알게 된 두 사람은 친하게 되었고 현치적은 학식이 높은 고전적을 존경하였다. 사냥에 능한 현치적은 꿩을 두 마리 잡으면 한 마리를, 세 마리 잡으면 두 마리를 고전적에게 갖다 주었다. 고전적은 마음 착한 현치적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집자리를 잡아 주기로 결심했다.  “현서방, 내가 터를 하나 골라줄 테니 거기에 집을 짓고 살아 보게. 당대에 밥은 먹을 걸세.” 이렇게 해서 현치적은 '진밭'에서 '뒷ᄃᆞ르'(여뀌왓이라고도 부름)로 옮겨 살게 되었는데 그 덕분인지 해마다 소들이 새끼를 잘 낳고 잘 자라서 소 부자로 소문이 날 만큼 잘 살게 되었다.
현재 이 터에는 단층 단독주택이 들어서 있는데 살고 있는 사람은 후손은 아니지만 이 터가 고전적 집터임을 알고 있다고 했다.
《작성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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