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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덕1리 모살개(포구) 02-24 | VIEW :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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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한림읍 귀덕리 1031-8번지 북쪽 바닷가
시대 ; 조선후기
유형 ; 어로시설(포구)

모살개는 복덕개와 두릇여 사이 후미진 곳에 있다. 모살개에서부터 서북쪽에 걸쳐 있는 ᄌᆞᆨ은여와 큰여를 의지하여 그 안에 자리한다. 이 두 개의 여(礖)는 하늬바람과 높새바람을 막아주고, 복덕개코지는 샛바람을 막아주는 포근한 곳에 자리한 셈이다.(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Ⅱ)
이 여(礖)들은 예로부터 석천도(石淺島) 또는 새여(鳥礖)라 부르기도 했으나 섬 모양이 거북이를 닮았다 해서 거북이도라고도 부른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989-9번지에 속하며 국유지다.(다음 지도에서 검색하면 번지 없는 곳이라고 나타남) 이곳에 세워진 등대는 아래 부분에 거대한 거북이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그래서 거북등대라고 부른다. 귀덕리 일부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에 거북이가 알을 낳는 굴이 있다고 해서 거북등대를 세웠다고 한다. 실제 굴이 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애월 앞바다에 거북이가 자주 등장하곤 한다. 특히 거북이가 올라오면 주민들은 이를 길조(吉兆)로 여기기도 한다.(제주일보 2018-03-01)
이 등대와 마주해서 있는 포구가 모살개다. 바닥에 모살(모래의 제주어)이 깔려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750년경에 제작된 『해동지도』중 제주삼현도에 표시된 歸德里 지경에는 卜德浦(現 복덕개)·紙浦(現 진질개)·牛池浦(現 용운포)가 있는데 모살개는 없는 것으로 보아 모살개는 복덕개보다 훨씬 늦은 시기에 만든 포구임을 알 수 있다.
모살개는 안캐(남쪽)와 중캐(동쪽), 밖캐(북쪽)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안쪽 어촌계복지회관 동쪽에 있는 안캐는 태풍 때 배를 피하거나 배를 수리하던 곳이고, 중캐는 밀물이 되면 나갈 배를 매어 두었으며, 밖캐는 수시로 드나드는 배가 정박했다.
제주 현무암으로 방파제를 겹겹이 쌓아 태풍을 막을 수 있게 만들어졌고 포구 밖에서는 수중암초들이 파도를 약화시켜 줬기 때문에 테우와 돛단배가 많았던 시절에도 태풍 피해가 없었다. 이런 포구 축조방식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다.(제주대미디어200429) 배를 매어두는 돌은 위가 뭉툭하여 밧줄이 벗겨지지 않도록 했다. 현무암 자연석으로 세워져 있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모살개는 조간대 중층에 걸쳐 있기 때문에 썰물에는 바닥이 말라버린다. 그래서 ᄌᆞᆨ은여의 갈래인 쳇끈여와 그 앞에 있는 바당여 사이에 배를 붙여 둬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배도 그 사이로 드나든다. 그래서 쳇끈여에는 시멘트로 기둥을 세웠다. 그것을 가늠하며 배를 컨트롤한다.(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Ⅱ)
방파제 위에는 1960∼1970년대에 시멘트를 발랐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2020년에 옛포구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시멘트를 완전히 걷어내고 돌로만 다시 축조했다. 중캐는 출입구를 막아서 배가 드나들 수 없게 되어 연못처럼 되었는데 테우 2척이 떠 있다. 그리고 연못 가운데에 돌탑을 세웠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큰여와 ᄌᆞᆨ은여가 방파제로 이어지고 큰여에서 북동쪽으로 145m의 방파제가 건설되었으며, 오남부리코지 안쪽으로 210m가 되는 동쪽 방파제가 만들어져서 접안할 수 있도록 해서 귀덕1리항으로 이름붙여졌다. 귀덕1리항은 복덕개와 모살개를 모두 포함하는 큰 항구가 된 셈이다. 따라서 모살개에는 큰 배는 들어올 일이 없게 되었다.
《작성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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