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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개동 명도암주둔소 터 03-29 | VIEW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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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제주시 봉개동 392-1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시설(성곽)

한상봉이 지은 『제주 4·3 시기 군경주둔소』에는 다음과 같은 자료가 나와 있다.
󰋼형태 : 사각형(회곽식)
󰋼성담 : 높이 3m, 추정 길이 35m×25m
󰋼초소 : 4곳(각 모퉁이에 1곳씩)
󰋼면적 : 약 1,000m²(약 300여 평)
󰋼식수 : 명도암물
󰋼내부 집 : 약 15평짜리 집 2채(작은 집은 부엌용)
󰋼축성에 동원된 마을 : 도련리, 봉개리, 삼양리, 화북리
󰋼현재 ; 밭 조성으로 훼철되었으며 일부 성담 존재

명도암주둔소를 쌓은 때는 4·3 기간 명도암 주민들이 소개되었다가 1949년 2월에 봉개리가 전도에서 처음으로 마을을 재건하던 시기였다. 봉개동 붉은오름 분화구 안(현 대기고등학교)에 함바집을 짓고 살면서 각 마을민들이 동원되었다. 마을이 불에 타서 가옥의 돌만 남아 있었는데 그 집담, 올레담 등을 가져다 주둔소 성을 쌓았다고 한다.

주둔소의 모양은 직사각형이었으며 남쪽으로 문이 있었다. 땅을 파 나무 두 개를 걸친 화장실이 성담 근처에 있었으며 초소는 모퉁이마다 있어 앉아서 밖을 볼 정도였다.
봉개동 강용기(1936년생)님은 1951년까지도 이곳에서 약 1년 동안 근무했다고 하며, 토벌갈 때의 상황에 대해 〈해병대 1개 소대가 찌들. 그기서 며칠 임시 왔당 나가곡. 토벌대가 왕 밤이민 용강지. 우리도 밤이 가면 다라쿳 우티 강 토벌대 강 잠복는 디 갔당 잠복했당 갔다 오고. 다라쿳 우에.〉라고 증언하였다. 한 부대가 오랜 기간 주둔한 것이 아니라 여러 부대가 거쳐 가는 곳이었으며, 이 시기에는 주식과 부식을 경찰이 제공할 때여서 마을에 민폐를 끼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1955년 3가구가 들어와 마을 재건에 나설 때 다시 주둔소의 돌담을 가져다 집을 지었으며 다시 3가구가 추가로 들어와 주둔소 성담을 가져다 집을 지었다고 한다. 1979년도 항공사진에 회곽식 주둔소 형태가 일부 보이나 1985년도 사진에서는 사라졌다. 주둔소가 있었던 언덕 동쪽은 도로가 확장되면서 약 2.5m〜3m가 잘려 낮아진 상태이고, 주둔소 터 남쪽으로는 길이 나 있으며 옛 주둔소 안은 밭으로 경작이 이뤄지고 있어 당시의 흔적은 볼 수가 없다.(『제주 4·3 시기 군경주둔소』)
《작성 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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