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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리 김녕지서 터 03-20 | VIEW :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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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3610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관공서 터
김녕지서는 1945년 10월 21일 국립경찰이 창설됨에 따라 재편되었으며, 4・3 당시 인근의 동복리, 월정리, 행원리, 한동리, 송당리, 덕천리를 관할하였다. 당시의 지서 건물은 기와집이었다. 1948년 4월 3일 무장대가 제주도내 11개 지서를 습격할 때 김녕지서도 습격당하여 경찰관 2명이 부상당했다. 그 해 8월 31일에도 무장대의 공격을 받고 1시간 이상 총격전을 벌였으나 사상자는 없었다.
4・3 초기부터 서북청년단이 진을 쳐서 김녕리를 비롯한 인근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지서에는 관할 구역에서 붙잡혀 온 무장대와 혐의자, 도피자 가족 등이 구금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죄없는 주민들이 항변 한 번 못해보고 숱하게 쓰러져갔다. 특히 김녕으로 소개되어 온 동복리 출신 한 할머니는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끌려가면서 “제발 철창이 아닌 총으로 쏘아 죽여 달라”는 통한의 부탁을 하기도 했다.
당시 김녕지서에는 지서장인 한〇〇와 애월 출신인 백 경사, 서북청년단 출신인 김용걸 등이 근무하고 있었다. 1948년 10월 이후에는 서북청년단 20여명이 근무하면서 인근 주민들을 고문, 학살하는 등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다. 특히 저승사자로 악명을 날렸던 김용걸은 말을 타고 다니며 회초리를 마구 휘둘러 파직되었으나 다시 경찰에 복귀하여 함덕지서 고문치사 사건을 일으킨 후 다시 파면되기도 했다. 반면, 제주 출신 한〇〇 주임은 주민의 억울한 희생을 줄이려고 애를 썼다고 주민들은 증언하였다.(제주4・3유적Ⅰ)
지금은 지서가 바로 길 맞은편으로 옮겨졌고 그 자리에는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바로 서쪽에는 버스정류소이다.
《작성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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