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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리 마당궤 03-18 | VIEW : 193
크기변환_북촌리_마당궤(2003)2.JPG(510.7 KB), Down : 0


위치 ; 북촌리 659-2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용암동굴(피난생활처)
북촌리 659-2번지 강서수씨 집 뒤뜰에는 1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용암동굴이 있다. 마을 청년들이 이 굴에 숨어 지내고 있었다. 그 옆 높은 지대에는 절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소년을 빗개(보초)로 세워 북촌학교 교사들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했었다.
1948년 6월 22일에는 이 굴 속에 숨어 있던 북촌리 주민 강서수 형제 등 9명이 제주경찰감찰청 1구서 경찰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 날 체포에는 미군 4명이 사복을 입고 참여했다. 1구서 경찰과 미군이 합동으로 북촌리를 수색하게 된 것은 6월 16일에 일어난 북촌 포구 경찰관 습격 사건 때문이었다. 이 사건으로 양태수 경감 등 경찰관 2명이 희생되었고 이후에는 군경이 북촌리를 주목하여 매일 마을 젊은이를 잡아갔기 때문에 청년들은 육지부 등으로 피신하였다.
6월 22일 마당궤에 숨어 있던 북촌 청년 9명은 경찰의 지시에 따라 7명이 굴 밖으로 순순히 나왔으나 2명은 겁에 질려 나오지 않자 경찰이 직접 들어가 끌고 나왔다. 이들 중 강동수는 바로 현장에서 고춧가루 고문을 당하였으며 나머지도 굴 밖에 꿇어앉아 매를 맞았다. 그 후 이들은 제주경찰서로 옮겨져 고문을 당한 후 재판을 받고 육지 형무소로 보내졌다.(제주4・3유적Ⅰ)
길가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판에는 〈마당궤 : 이곳은 4・3 당시 북촌 마을 주민들이 숨었던 은신처이다. 북촌포구 경찰관 피습사건으로 토벌대의 수색이 강화된 1948년 6월 22일 이곳 마당궤에 숨어 있던 북촌마을 청년 9명이 발각되어 제주경찰서에 연행된 곳이다. 이들은 이후 육지 형무소로 보내졌다. 그 날 수색은 경찰과 미군이 같이 참여했는데 미군(4명)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지금은 굴 입구를 돌로 쌓아 막은 상태이고 굴 동쪽에는 조그만 바위그늘이 형성되어 있다.
《작성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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