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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산리 웃동네(웃가름, 잃어버린 마을) 터 03-18 | VIEW :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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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조천읍 와산리 230-1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마을 터
웃동네는 와산리 본동에서 남쪽으로 0.5㎞떨어진 곳에 있었다. 당시 20호 정도에 100명 정도의 주민들이 농사와 목축에 종사하며 살아가던 마을이었다. 웬만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새물이 있어서 그 주변에 마을을 이루었다.
와산리 웃동네는 와산리 전체가 토벌대에 의해 방화되었던 1948년 11월 20일 소각되었다. 그리고 곧 해변 마을로 내려가라고 소개령이 내려졌다. 다른 마을과 달리 미리 주민들이 피신해 버렸기 때문에 마을이 방화되던 날이나 소개 당시에는 인명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잿더미가 된 마을을 보며 큰 고민에 빠졌다. 토벌대가 그 동안 보여 온 행태를 봤을 때 해변 마을인 조천이나 함덕으로 내려간다고 해서 목숨이 보장되진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남자와 젊은 여자는 마을 주변에 남고 주로 어린이와 노인들만 해변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낮에는 마을 위 지경인 왕ᄆᆞ루곶이나 동산전, 새미오름 등에 흩어져 피신생활을 했고, 밤에는 폐허가 된 마을로 돌아와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다.
해변 마을로 간 사람들도 식구 중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입산자 가족이란 이유로 함덕 백사장이나 조천지서 앞 밭 등지에서 대살(代殺)당하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마을 근처의 곶자왈이나 오름 등지에 피신했던 주민들도 마을 방화 이후 본격화된 토번작전에 걸려 하나둘 총살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1949년 봄 대흘초등학교 터에 성을 쌓아 함바(임시가옥) 집에서 대흘, 와흘, 교래 주민 등과 집단생활을 하다 1952년 와산 본동에 자리를 잡았으나 웃동네는 재건되지 않아 잃어버린 마을로 남게 되었다.
옛 집터들은 덤불숲과 대나무숲, 밭 등으로 변해 있다. 옛날부터 방물장수가 다니던 길이라는 선반한질이 일부 남아 있으며 옛 집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올레도 남아 있다.(제주4・3유적Ⅰ)
와산리에서 태어나 같은 마을에 시집가서 살고 있는 주민 고〇〇(1941년생 女)씨와의 대화에서는 웃동네보다는 웃가름이라는 말로 통하였으며, 대나무숲이 있는 밭은 대부분 집터라고 이야기했다. 와산리 230-1번지 길가에는 폭낭(팽나무) 정자나무와 그 둘레를 돌로 둘러 쌓은 쉼터가 옛모습으로 남아 있다.
《작성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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