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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리 새성창(포구) 04-01 | VIEW :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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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구좌읍 동복리 1579-5번지의 북쪽
시대 : 조선
유형 ; 교통․어로시설(포구)
동복리는 16세기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설촌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설촌 당시부터 김녕리에 속해 있었다. 옛 이름인 ᄀᆞᆯ막을 한자로는 변막(邊幕)이라 썼다. 邊幕은 막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875년 당시 초대 경민장이었던 신영수씨가 중심이 되어 김녕리에서 독립시키고 마을 이름도 동복리로 바꿨다. 동복리는 어장 면적이 좁고 인근 북촌이나 김녕 마을에 비해 해산물도 많지 않다.
옛 문헌을 보면 동국여지승람(1530년), 남사록(1601년), 탐라지(1653년)까지는 동복리의 포구는 언급되지 않았고, 이증(李增)의 남사일록(南槎日錄, 1680년)에 처음으로 변막포(邊幕浦)가 등장한다. 변막포는 북포(北浦)와 영등포(迎登浦) 사이에 있다고 하였다. 이형상(李衡祥)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1703년)에도 북포(北浦)와 김녕포(金寧浦) 사이에 변막포(辺幕浦)가 보인다.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 1750년)에는 변막촌 아래 변막포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니 이 마을의 맨처음 포구는 펄개였던 것이다.
지금 이 마을 포구로는 동하동의 무근성창(묵은성창), 새성창과 서하동의 펄개라는 두 개의 포구를 거느리고 있다. 펄개는 낮고 좁아서 큰 배를 댈 수 없게 되어 새로 성창을 만든 것이 동복성창으로 불려 오다가 그 동쪽으로 성창을 추가하면서 묵은성창과 새성창이 되었다. 새성창은 새로 만든 성창(城艙)이라는 말이다. 새성창의 출입구는 동쪽으로 나 있다. 입구로 들어오면 장방형의 성창이 축조되어 있고 서쪽으로 다시 삼각형 모양으로 축조된 뱃자리가 있다. 서쪽의 삼각형 부분을 묵은성창이라 하고 동쪽의 사각형 부분을 새성창이라고 한다. 새성창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축조한 것이다. 새성창 축조 당시 구젱기여동산과 괸물개 양편으로 선착장 36m와 50m가 만들어졌다. 구젱기여동산 선착장은 직선으로 더 뻗어 나갈 수 있었으나 속칭 장복 지경에 있는 신(愼)씨 선묘를 가로막게 되어 마을의 액운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중단되었다고 한다.(좌승훈의 『제주 땅 의미 찾기 포구』) 1970년대에 서재철 작가가 찍은 묵은성창을 보면 모두 사람의 힘으로 쌓은 방파제에 윗부분에만 시멘트로 처리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콘크리트로 바뀌었고 계단식으로 바뀐 부분도 있다. 묵은 성창은 50여년 전에 비하여 더 좁아졌다. 새성창 입구 북쪽으로도 현대에 이르러 북쪽으로 뻗어나가 동쪽으로 꺾이는 방파제를 만들었다.
《작성 201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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