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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재리 강공흡 지사 생가 터 04-28 | VIEW :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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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협재리 1860번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위인선현유적

강공흡(1917∼1974)의 본관은 진주, 협재리에서 姜弼周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림공립보통학교 재학 때 협재소년회에 가입, 「어린이」라는 한글 잡지를 탐독하면서 민족의식이 싹텄고, 1931년 6월 윤한진(尹漢珍)의 단추 공장에 취직, 1933년 1월 독서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면서 민족 해방 운동을 모색하였다. 또 동년 9월 명월(明月)리 소재의 한림보통학교를 한림리로 이설하는 데 있어서 무산 농민의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이설 반대 진정서를 제출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1934년 7월 장용진(張溶珍), 홍경옥(洪卿玉) 등과 함께 협재리에서 무명의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소년부(少年部)를 담당, 동지를 규합하여 공산주의 폭력 혁명으로 일제를 타도하고자 하였고 또 1934년 혁명적 제주 농민조합 준비위원회 활동이 탄로나 동년 8월 일경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37년 4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얼마 후 이들 동지들과 5인 결사(結社)라는 모임을 몰래 조직,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으로 일제를 타도하자고 결의 맹세하였다. 책임자 좌응신, 농민부 양두옥, 소년부 김정맹(金精孟), 연락부 김두진, 학생부 고자화(子華)가 각기 담당, 항일 투쟁의 방편으로 신창(新昌)서당에서 이민(里民) 대회를 통해 우편소(郵便所)를 설치하려는데 저항하였다. 5인결사는 두모신창리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운동 방침은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①각 부문은 각각 목적 달성을 위하여 가장 용감하게 투쟁한다.
②세부적 운동 방침은 책임자와 협의 결정한다.
③회합은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소집한다.
④동지 포섭은 엄선주의로 한다.
⑤책임자에 대한 보고는 필요하다고 인정된 때 한다.
1933년 1월 제주도(濟州島) 한림면(翰林面) 협재리(挾才里) 홍경옥(洪卿玉)의 집에서 장용진(張瑢珍) 등과 함께 사회과학 서적을 윤독(輪讀)하여 사회주의사상을 함양하였고 같은 해 9월에는 구우면(舊右面) 소재 구우공립보통학교(舊右公立普通學校)의 이전문제(移轉問題)에 관해 무산농민(無産農民)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하여 이전반대진정서(移轉反對陳情書)를 만들어 반대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1934년 7월 하순 장용진·홍경옥과 함께 협재리에서 무명(無名)의 비밀결사(秘密結社)를 만들어 소년부(少年部)를 담당하였으며, 동지규합(同志糾合)에 힘쓰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1937년 4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註·판결문(1937. 4. 12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제주도사연구(제주도사연구회, 1991. 11. 1) 160면) 2017년도 6월 제주 출신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작성 202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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