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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동 채순병(蔡順秉) 지사 묘 02-04 | VIEW : 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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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노형동 산19-2번지 제주시충혼묘지내 애국선열묘역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묘
제주시 충혼묘지는 조례 제1252호(1989.01.09.)에 따라 제주시 출신으로서 국가에 유공한 자의 유골을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을 영구히 추앙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애국선열 묘역에는 최정숙, 채순병, 오성행 지사와 4·19 때 부상당한 안창원의 묘가 있다.
채순병(1904∼1922) 지사는 본관은 평강(平康). 아버지는 채수용(蔡洙鎔, 채수용은 원적은 전남 함평(咸平)군 함평면 함평리 171번지인데 한말에 형 채수강(蔡洙康)이 본도 정의군수로 부임할 때 함께 제주로 이적(移籍)하였다. 채수용은 민족주의자로서 1926년 제주공립농업학교 동맹 휴학 때 장용견(張容堅)·홍순녕(洪淳寧)과 함께 수습 실행위원으로 뽑혀 문제를 해결하였다.)이며, 제주시 一徒里 135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김찬흡과 박원연씨의 자료 및 한겨레(190306)에는 사립국어보급학관(학교) 고등과 학생으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고 되어 있다) 중 서울 안국동 39번지에 있는 박태병의 하숙집에서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김종현(金宗鉉), 전라남도 함평 출신의 최강윤(崔康潤) 등과 함께 하숙하였다.
제2회 독립만세운동이 있을 것이란 소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전달되어 풍설처럼 나돌았는데 거사 장소가 제각각인 것을 알고 이들은 1919년 3월 4일 하숙방에서 서울 學生團主導 獨立萬歲運動을 높이기 위하여 〈내일 오전 8시 30분 남대문역 앞에서 제2차 독립 만세 운동이 개최되니 태극기를 가지고 나오라〉는 檄文 400餘枚를 만들어 동지 3명과 함께 中學洞을 비롯 附近 各洞에 配付하였다.  이 격문은 김종현이 비상금을 털어 사온 탄산지(복사에 쓰이는 종이) 200매를 잘라 400장으로 만들었다. 3월 5일에는 南大門驛前 獨立萬歲示威에 群衆을 動員하여 수백명의 示威群衆과 함께 「朝鮮獨立」이란 깃발을 들고 獨立萬歲를 高唱하며 示威中 매일신보사 앞에서 被逮되었다. 채순병의 당시 나이는 16세엿ㅅ다. 당시 제주 출신으로 서울의 만세 운동에 참가한 학생은 채순병을 비롯해 경성보고 2년생 박규훈(朴圭壎)과 동교 4년생 김성숙(金成淑), 그리고 경성여고보(京城女高普)의 여학생 최정숙(崔貞淑) 등이 활약하였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자 이에 불복 항소하였고,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未決期間을 合算하며 1年 3月餘間의 獄苦를 치렀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20년 5월 14일 가출옥하여 전라남도 강진에 사는 양부 채수강(蔡洙康) 집에서 휴양하게 되었다. 1922년 학업을 계속하려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요시찰인(要視察人)으로 지목되어 늘 일본 경시청(警視廳)의 감시와 미행을 받았으며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요절(夭折)하였다. 1990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보훈처 공훈록,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제주도청 홈피)
《작성 1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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