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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동 주루레물(용천수) 02-04 | VIEW :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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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해안동 2783번지(하천) 중에서 주루레길82과 주루레길83의 사이
시대 : 조선
유형 ; 수리시설(용천수)
노형동지(老衡洞誌, 2005)와 각종 마을 유래를 실은 여러 회지 등의 기록물에 따르면 지금의 해안동 지경(地境)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가장 오래된 지역은 해안동 동남쪽(지금의 해안축산단지 북쪽)인‘주루레’일대로 알려져 있다. 시기는 약 500~600년 전인 조선 초기로 알려져 있고, 진주 이씨(晉州 李氏)가 처음으로 터를 잡고 설촌하였다고 한다.
진주이씨(晋州李氏)는 경주이씨의 한 분파이다. 진주이씨(晋州李氏)의 시조 이군재는 조선 태조 때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왕(王)에게 직간(直諫)을 하다가 성천(成川)으로 유배(流配)되어 그 곳에 정착세거(定着世居)했다. 그 뒤 대제학(大提學)을 사임(辭任)하고 고향인 진주(晋州)로 내려가 본관(本貫)을 진주(晋州)로 삼았다. 그렇다면 진주이씨의 시작은 1350~1400년 사이므로, 그 후손들 이 제주로 들어온 시기는 아마도 2~3세대 이후인 1400년대 중반 이후일 것이다. 제주도에는 1985년 현재 150여 명이 살고 있다. 진주이씨는 제주도에 입도하여 여러 경로를 거쳐 주루레에 정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현재 해안동의 설촌시기는 진주 이씨가 도래한 조선 초기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진주 이씨가 주루레에 들어온 것보다 훨씬 이전에 지금의 당동산(절물)에 고려중기(약 13세기)부터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이 외에도 해안동 지경에는 고려시대 중기부터 이미 창건된 사찰이 여럿 있었다고 하니 해안동 지경에는 고려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해안동에는 고려시대에도 마을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주로 목장관리인이나 군사적 주둔 목적의 관리자, 혹은 사찰이나 신당(神堂)과 관련된 부수적인 것으로서 오랜 정착민으로서의 설촌은 유래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설촌의 중심은 물이다. 해안동의 최초 설촌지로 알려져 있는 이곳 주루레 샘물은 큰 돌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는 틈에서 나온다. 작은 웅덩이를 이루었다가 다듬은 돌로 물통을 만든 곳을 지나 작은 개울을 따라 흘러간다. 수질은 매우 깨끗하다.
이 물이 있는 곳에서 30m 북쪽(주루레길82)에는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주루레 주위를 지금은 묵은가름이라고 부른다.
《작성 1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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